시청률 2%대인데 넷플릭스 한국 1위, 이영애의 파격 변신이 빛난 드라마: [구경이] 정주행 후기
| 드라마 구경이 공식 포스터 |
부산 사직구장에서 KBO 경기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이었습니다. 경기 결과가 아쉬워서 멍하니 넷플릭스를 열었는데, 한국 TOP10 목록에 낯선 제목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구경이」. 썸네일 속 이영애의 모습이 제가 알던 이영애가 아니었습니다. 산발머리에 퀭한 눈, 구부정한 자세. '대장금'과 '친절한 금자씨'의 그 배우가 맞나 싶어서 소개 문구를 눌렀더니 "게임과 술이 세상의 전부인 보험조사관"이라는 설명이 떴습니다. 호기심에 1화를 틀었고, KTX가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4화를 봤습니다. 서울역에서 내려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이어폰을 빼지 못했습니다.
시청률 2%대의 실험작, 넷플릭스에서 재발견되다
「구경이」는 2021년 10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JTBC 토일 드라마로 방영된 12부작입니다. 「아무도 모른다」와 「조작」을 연출한 이정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한예종 출신의 신예 작가팀 성초이가 극본을 썼습니다. 이영애가 전직 경찰 출신 보험조사관 구경이 역을, 김혜준이 완전범죄를 위장하는 대학생 살인마 케이(이경) 역을 맡았습니다. 곽선영, 김해숙도 주요 배역으로 함께했습니다.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 최고 시청률은 2회의 2.7%였고, 전체적으로 2%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방영 중에 넷플릭스 한국 TOP10 1위에 오르며 묘한 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TV 시청률로만 보면 조용히 지나간 드라마인데, 넷플릭스에서는 「오징어 게임」과 「마이 네임」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도 KTX에서 이 작품을 발견한 게 바로 그 넷플릭스 TOP10 덕분이었으니, 플랫폼이 바뀌면 작품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체감한 경우였습니다. 현재도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산소 같은 여자에서 게임 중독 집순이로: 이영애의 해체
이영애라는 배우에게는 오랫동안 특정한 이미지가 따라다녔습니다. '대장금'의 단아함, 광고 속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 2017년 「사임당, 빛의 일기」도 그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경이」의 첫 장면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쓰레기 속을 뒹굴고, 맥주를 게임 속 엘릭서 마시듯 들이키고, 산발한 채 소파에 파묻혀 있는 이영애. 4년 만의 복귀작으로 이런 캐릭터를 선택한 것 자체가 하나의 선언 같았습니다.
저도 게임을 즐기고 비수기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다 보니, 구경이라는 캐릭터에 묘한 공감이 갔습니다. 물론 구경이처럼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건 아니지만, 방 안에서 화면만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내는 그 감각은 알 것 같았습니다. 여자친구한테 이 드라마를 추천했더니 처음에는 "이영애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라며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1화를 같이 보자마자 "이 언니 연기 미쳤다"라며 바로 빠져들었습니다. 구부정한 어깨, 퀭한 눈, 유령처럼 걷는 동선까지, 이영애가 몸 전체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게 두 사람 모두의 감상이었습니다.
김혜준의 케이: 빌런이 주인공을 위협하는 드라마
「구경이」를 이야기하면서 김혜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케이(이경)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었습니다. 해맑은 미소 뒤에 살인을 숨기는 대학생이라는 설정도 독특했지만, 이 캐릭터가 진짜 무서웠던 건 '죽어도 될 만한 인간은 죽여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기 때문입니다. 케이가 타깃으로 삼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불쾌한 범죄자들이다 보니, 시청하면서 묘하게 케이 편을 들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혜준은 이 역할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는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결과였습니다. 여자친구는 중반부터 "김혜준이 이영애를 잡아먹을 것 같다"고 했고,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두 배우의 대결 구도가 이 드라마의 가장 강한 축이었습니다. 특히 구경이와 케이의 이름이 서로를 거꾸로 한 것이라는 설정(구경이 ↔ 이경)이 밝혀지는 순간, 두 캐릭터가 서로의 거울이라는 구조가 선명해지면서 이야기의 깊이가 한 단계 올라갔습니다.
게임 화면과 연극 무대가 만난 연출의 실험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건 드라마인가, 웹툰인가, 게임인가"였습니다. 이정흠 감독은 범죄 수사물이라는 장르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운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구경이가 사건을 추리할 때 화면이 연극 무대처럼 전환되면서, 이영애가 무대장치를 직접 누르면 사건의 재구성이 펼쳐지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시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9화였습니다. 구경이가 오크 통에 갇혀 쓰레기장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갑자기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더니, 게임 화면처럼 장애물을 피하며 굴러가는 연출이 나왔습니다. 잔인할 수 있는 상황을 게임 중독자라는 캐릭터 설정에 맞게 익살스럽게 풀어낸 건데, 저는 이 장면에서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에서 혼자 보고 있었는데, 마침 체크인하러 온 게스트가 "한국 드라마 보시는 거예요?"라고 물어서 잠깐 민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술을 마시면 에너지가 차오르는 연출이라든가, 매회 오프닝과 엔딩에 들어가는 애니메이션이라든가, 웹툰과 게임을 즐기는 저 같은 시청자에게는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시청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 작품
솔직히 말하면 「구경이」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습니다. 치밀한 추리물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케이의 살인 수법이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조력자와의 공모 과정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보다 꼬이는 전개가 답답함을 줄 때도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정통 추리물보다는 '인물과 인물의 신념이 부딪히는 사회파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에, 장르적 기대치를 미리 조정하고 보시는 걸 권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는,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들이 12회 안에 빼곡하게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 주인공 없이 여성 캐릭터들만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구조, 범죄물과 코미디의 경계를 넘나드는 톤, 그리고 이영애라는 배우가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허문 연기.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투숙했던 프랑스인 게스트에게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이 작품을 알려줬더니, 며칠 뒤 "이 드라마 연출이 유럽 드라마 같다"는 감상을 보내왔습니다. 시청률 2%대라는 숫자만으로는 이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저도 KTX 안에서 넷플릭스를 켜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 정통 추리보다 캐릭터 간 심리전과 철학적 질문을 좋아하는 분
✔ 게임이나 웹툰 감성의 독특한 연출을 즐기는 분
✔ 12회 완결이라 짧고 굵게 정주행하고 싶은 분
이 글을 마무리하는 사이에 게스트하우스 라운지 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네요. 조용한 밤에 넷플릭스를 켜고 1화를 틀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영애가 캔맥주를 따는 첫 장면부터, 지금까지 알던 그 배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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