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로맨스] 시청률은 아쉬웠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살린 지현우 의학 로맨스 정주행 후기
| 사생결단 로맨스 공식 포스터 |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는 정말 볼 가치가 없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꽤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방영 당시 화제가 되지 못했고, 주변에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작품인데 막상 보고 나니 "왜 이걸 그때 안 봤지?"라는 후회가 밀려오는 경우가 분명 있거든요. 오늘 이야기할 사생결단 로맨스가 딱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카톡 캡처 한 장에서 시작된 정주행
이 드라마를 알게 된 건 대학 동기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카톡으로 드라마 캡처 한 장이 날아왔는데, 지현우가 병원 복도에서 이시영에게 무언가를 쏟아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맥락도 모른 채 표정만 봤는데 묘하게 눈길이 가서 "이게 뭔데?"라고 물었더니, "사생결단 로맨스라는 건데 시청률은 바닥이었어. 근데 나는 재밌게 봤거든"이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왓챠에서 1화를 틀었고, 평일 저녁마다 서너 회씩 보면서 일주일 정도에 걸쳐 32회를 완주했습니다.
사생결단 로맨스는 2018년 7월부터 9월까지 MBC 월화 미니시리즈로 방영된 32부작 의학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이창한 PD가 연출하고 김남희·허승민 작가가 극본을 맡았으며, 지현우·이시영·김진엽·윤주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평균 시청률이 약 2.8%에 그쳤고, 19회에서는 1.9%까지 떨어지며 당시 역대 드라마 최저 시청률 5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호르몬이라는 소재: 신선함과 어색함 사이
이 드라마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호르몬'을 로맨스의 중심 장치로 끌어왔다는 것입니다. 여주인공 주인아는 인간 감정의 98%가 호르몬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 내분비내과 의사이고, 남주인공 한승주는 교통사고로 뇌에 파편이 박히면서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긴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화학 반응으로 설명하려는 여주와, 분노와 짜증 외에는 감정 표현이 서투른 남주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솔직히 초반에는 이 설정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 기복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분이 급변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드라마가 그걸 호르몬이라는 의학적 틀로 풀어가니까 나름대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다만 중반 이후로 이 소재가 서사에 깊이 녹아들기보다는 배경 장치로만 남은 느낌이 들어서, 초반의 기대만큼 끝까지 밀고 가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지현우와 이시영: 예상 밖의 케미가 살린 드라마
사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지현우와 이시영의 조합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지현우 하면 부드러운 로맨스물의 인상이 강했고, 이시영은 액션이나 활동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니 이 둘의 호흡이 의외로 잘 맞았습니다. 특히 한승주가 감정을 억누르다 터뜨리는 장면에서 지현우의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바로 그 장면이 왜 눈길을 끌었는지 직접 보고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이시영의 주인아도 좋았습니다.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가 자칫 과하면 피로해질 수 있는데, 이시영이 그 선을 잘 조절했다고 느꼈습니다. 여자친구는 주인아의 성격이 본인과 비슷하다면서 특히 좋아했는데, 저는 오히려 한승주 쪽에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일하면서 짜증나는 상황을 참고 또 참다가 문득 폭발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면서 체크인 시간을 한참 넘겨 새벽에 도착하는 게스트를 웃으며 맞이할 때, 한승주의 눌린 감정이 묘하게 공감됐습니다.
중반 이후 흔들린 서사: 32회가 독이 됐을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아쉬움을 꼽으라면 역시 분량 대비 이야기의 밀도입니다. 32회라는 회차가 이 작품에는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 10회 정도까지는 호르몬 소재의 신선함, 캐릭터 간 갈등, 병원 내 권력 다툼이 적절히 섞여서 긴장감이 있었는데, 15회를 넘기면서부터 이야기가 제자리를 도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오해와 화해가 반복되고, 서브 캐릭터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가 희석되는 구간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20회 전후로 한승주의 과거 사고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전개가 급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주세라 캐릭터가 갑자기 악역으로 전환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부족했고요. 주말 저녁에 여자친구와 같이 보다가 "이 부분은 좀 억지 아니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16회 정도로 압축했으면 훨씬 탄탄한 작품이 됐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018년 아시안 게임 중계 때문에 결방이 잦았던 것도 당시 시청 흐름을 끊는 데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본 이유, 그리고 시청률 너머의 가치
서사가 흔들리는 구간에서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결국 배우들의 힘이었습니다. 지현우는 한승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기존 로맨스물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거친 면모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이시영은 밝은 에너지 속에 단단함을 숨긴 주인아를 잘 구현했습니다. 김진엽의 차재환도 단순한 삼각관계 장치가 아니라 나름의 서사를 가진 인물이었고, 마지막에 한승주의 수술을 집도하는 장면은 두 라이벌의 관계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최종회에서 한승주가 수술 후 완쾌하고 주인아에게 고백하는 결말은 예상 가능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감정선은 충분히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해피엔딩이 뻔하다고 해서 감동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최근에 웹툰 원작 드라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위주로만 골라 보다가, 이렇게 지상파 의학 로맨스를 뒤늦게 정주행하니 오히려 신선했습니다. 화려한 제작비나 화제성 없이도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한 작품을 지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시청률 2.8%라는 숫자는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의 극히 일부만 반영한 것 같습니다. 물론 완벽한 작품은 아닙니다. 32회의 늘어진 전개, 중반 이후의 서사 반복, 일부 캐릭터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분명한 한계였습니다. 하지만 지현우와 이시영이 보여준 연기, 호르몬이라는 독특한 소재, 그리고 최종회까지 이어진 따뜻한 결말은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끝까지 따라간 드라마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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