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나이트' 조커 연기, 히스 레저가 안 보이고 조커만 보였다
히스 레저가 안 보이고 조커만 보였다. 저 인간 뭐지 싶어서 빨려들어갔다. 정신 차려보니 그 장면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그게 언제였냐면, 영화 막바지에 배트맨과 조커가 마지막으로 부딪히는 장면에서였다. 나는 다크나이트를 보면서 좋은 장면이 많다고 느꼈지만, 진짜로 화면 앞에서 숨을 멈춘 건 딱 그 몇 초였다. 이 글은 그 몇 초에 대한 이야기다. 2008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이 영화에서, 나를 붙잡은 건 화려한 액션도 반전도 아니고 조커 하나였다.
다크나이트 조커, 첫인상은 악마 빙의
조커가 처음 제대로 눈에 들어왔을 때, 내가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진짜 악마에 빙의된 것처럼 연기한다. 연기를 잘한다, 이런 말로는 부족했다. 배우가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조커라는 존재 자체가 저 사람 몸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웃는데 그 웃음이 소름이었다. 나는 그 웃음이 왜 소름인지 한참 생각했는데, 결국 답은 하나였다. 저건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게 웃고 있다는 느낌. 눈은 안 웃는데 입만 웃거나, 반대로 아무 이유 없이 즐거워 보이는데 그게 하나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 그런 어긋난 웃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히스 레저는 이 역할을 위해 6주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조커라는 캐릭터만 파고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일화를 듣고 납득이 갔다. 화면에서 느낀 그 "빙의된 것 같다"는 감각이 그냥 내 착각이 아니라, 배우가 실제로 자기를 갈아 넣어서 만든 결과였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웃음이 그렇게 만들어진 웃음처럼 안 보이고, 그냥 원래부터 저 인간이 저런 인간이었던 것처럼 보였던 거다.
나는 다른 조커 배우들이랑도 비교해봤다. 내가 느끼기엔, 다른 조커들은 좀 더 단순하게 다가왔다. 각자 매력이 있고 나름의 해석이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만큼 심오하게 와닿지 않았다. 악당은 악당인데, "왜 저러는 거지"라는 질문이 잘 안 생겼다. 나쁜 놈이니까 나쁜 짓을 한다, 딱 그 정도 선에서 내 감상이 멈췄다. 그런데 히스 레저의 조커는 달랐다. 이 조커는 볼수록 속을 알 수가 없었고, 알 수 없으니까 더 무서웠다.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뭔가 자기만의 논리가 있는데 그 논리가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차이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옥상 장면, 떨어져도 웃으면서 조롱
영화 후반부, 조커가 높은 빌딩을 점거한 상황에서 배트맨과 마지막으로 부딪힌다. 여기서 배트맨이 조커를 건물 아래로 떨어뜨릴 것처럼 매달아놓는 순간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이면 어떻게 될까. 자기 목숨이 남의 손에 달린 상황이면 겁에 질리거나, 살려달라고 빌거나, 최소한 표정이라도 굳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조커는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그냥 웃는 것도 아니고, 그 상황에서 배트맨을 조롱했다. 자기 목숨을 쥐고 있는 상대를 오히려 가지고 놀았다. 죽음이 코앞인데, 그걸 전혀 겁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걸 보면서 내 입에서 나온 생각은 이거였다. 와, 조커는 죽음 앞에서도 여유롭구나. 나는 이 감정이 무섭다기보다는, 뭐랄까, 압도당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죽음을 안 무서워하는 인간은 통제가 안 된다. 협박이 안 통하고, 거래가 안 되고, 어떤 위협도 먹히지 않는다. 배트맨이 아무리 힘이 세도 이 인간한테는 그 힘이 소용이 없다는 게 그 짧은 순간에 다 드러났다. 나는 그 장면에서 조커가 왜 이 영화에서 배트맨보다 더 강해 보이는지 이해했다. 물리적으로 진 건 조커인데, 정신적으로는 조커가 끝까지 이기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여유가 조금은 멋있기도 했다. 악당한테 멋있다는 말을 붙이는 게 좀 그렇지만, 죽음 앞에서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그 태도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연기를 너무 잘한다고 느꼈다. 저 여유가 진짜 여유처럼 보였으니까.
히스 레저가 사라진 몇 초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연기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연기라는 걸 잊은 적은 없었다. 당연하다. 영화 보면서 저게 진짜라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나. 조커가 무서워도 그건 히스 레저라는 배우가 잘 만든 캐릭터니까 무서운 거지, 진짜 조커가 세상에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딱 그 순간에서만큼은 달랐다. 조커가 웃으면서 배트맨을 조롱하던 그 몇 초. 그때는 히스 레저라는 배우가 안 보였다. 화면에 그냥 조커만 있었다. 아 이 배우 연기 잘하네, 이런 생각조차 안 들고 그냥 저 인간 뭐지 싶어서 빨려들어갔다. 평소엔 "연기 잘한다"고 한 발 떨어져서 보던 내가, 그 순간만큼은 그 거리감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경계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 몇 초 동안은 그냥 조커라는 인간을 실제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이 몇 초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몇 초 안 됐을 거다. 근데 그 짧은 순간이 나한텐 되게 길게 느껴졌다. 화면 앞에서 잠깐 숨 멈추고 본 느낌. 지나고 나서야 아 방금 뭐였지 싶었으니까.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였는데,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몰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시계를 볼 겨를도 없이 화면에 빨려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서야 방금 내가 어디 갔다 온 거지 하는 그 느낌.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그리고 히스 레저의 조커를, 딱 그 몇 초로 기억한다. 명대사가 많은 영화고 유명한 장면도 많지만, 나한테 다크나이트는 배우가 사라지고 캐릭터만 남았던 그 짧은 순간의 영화다. 다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나는 그 옥상 장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볼 것 같다. 그때 또 숨을 멈추게 될지, 아니면 이미 알고 봐서 그 마법이 안 통할지,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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